좋은 글
개구장이 소년의 향수~(
by 월영공주
2007. 9. 23.
어머니의 분주한 손놀림으로 부뚜막 가마솥에 걸쭉한 풀이 익어갈 무렵 마루아래 흙 토방 한켠에는 묵은 옷을 벗어버린 앙상한 여닫이 문들이 새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닳아버린 몽당 빗자루를 움켜 쥔 뭉턱한 아버지의 손놀림이 이리저리 가볍게 움직일때 어느새 앙상한 방 문살들은 뽀얀 창호지로 새옷을 갈아입고
고된 허리 쭈욱 펴시는 넉넉한 아버지의 등뒤, 구경하던 소년의 작은 손바닥엔 어여쁜 코스모스 꽃잎이 활짝 피었다.
씨익~~ 밝게 웃으시며 꽃잎을 건네받은 아버지의 손은 다시한번 신비로운 손놀림으로 이어지고 그렇게...그렇게.... 빛바랜 방문 쇠고리 앞엔 가을의 어여쁜 꽃무늬가 그림처럼 새겨졌다.
넉살좋은 보따리 아주머니의 걸쭉한 입담과 너털 웃음이 아담한 시골집 마당에 울려 퍼질때 하나 둘,동네 아주머니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마루바닥에 쫙 펼쳐놓은 옷가지들을 겹눈질로 쓸쩍 훔쳐 보던 소년은 중간의 꽃무늬 화사한 꼬까 옷에 애절한 소망의 눈망울을 담아 멈췄다.
애절한 눈망울을 스치듯 지나치신 어머니는 아는지 모르는지 몇번을 접어 입어도 될 것같은 큼직한 옷 한벌을 골라 곱게 개어 안방에 슬며시 밀어 놓으셨다.
길게 늘어선 많은 사람들..... 송편을 빚기 위해 불린 쌀을 들고 찿아간 방앗간, 저만치 앞에 선 이웃집 숙이와 소년의 눈이 마주치고 개구장이 소년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화사한 꽃무늬로 단장한 토담 방 벽... 까실한 새 이불 머리맡엔 낮에 사놓은 꼬까옷 고이 접어놓고 쉽사리 밝지 않을것 같은 아침을 기다리던 소년은.......
풋풋한 꽃 벽지의 향기에 취해 문고리 앞에 새겨진 고운 꽃잎을 가슴에 품으며 이웃집 숙이와 정답게 손을잡고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길을 훨훨 날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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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올 가을은 블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