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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江邊紀曲강변기곡

by 월영공주 2007. 4. 23.

봄 냄새 가득한 강변로를 지난다.
공놀이, 산책, 조깅 … 휴일의 일상들이 전개된다.
훈풍에 유유자적하는 유람선과 달리 
홀씨되어 흩날릴 준비를 마친 성급한 민들레 하며
반포대교 지난 고수부지에는 유채꽃이 한참이다.
연두색 배경에 샛노란 칼라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거기 봄이 자글자글 끓는다.

 


세상에 소음 보태지 않은
울음소리 웃음소리 그 흔한 날갯짓 소리조차도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뿔도 침도 한 칸 집도 모래무덤조차도
배추흰나비 초록 애벌레
배춧잎 먹고 배추흰나비 되었다가
자기를 먹인 몸의 내음
기억하고 돌아온 모양이다
나뭇잎 쪽배처럼 허공을 저어 돌아온
배추흰나비 늙어 고부라진 노랑배추꽃 찾아와
한 식경 넘도록 배추밭 고랑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지니고 살지 않아도
무거운 벼랑이 몸 속 어딘가 있는 모양이다
배추흰나비 닻을 내린
늙은 배추 고부라진 꽃대궁이 자글자글 끓는다

[거기쯤에서 봄이 자글자글 끓는다/김선우]

 

문득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오백여년 전 천리길 상류 영월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천만 리(千萬里) 머나먼 길에 고흔 님 여희압고
내 마음 둘 듸 업셔 냇가에 안잣시니
져 물도 내 안과 갓틔여 우러 밤길 예놋다.


어린 단종에게 사약을 전달하고 돌아서는 왕방언의 눈물은

강줄기 따라 강화 포구로 흘러간지 이미 오래일 것이다.

사의고 여의는 이별만큼이나 본디 삶으로의 귀환에 따르는 별리

또한 애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별은 운명이다. 무르익는 봄 만큼이나 봄날과의 이별 또한 숙명이다.

봄날의 절정에 봄날을 보내고 추억할 준비를 하기로 한다.

 

 

푸른 물기 머금은 별들
자작나무 흰 가지마다 피어나는 저녁
들릴 듯 안 들릴 듯 희미한 물소리
어둠 속으로 길을 냅니다.
아무 기다림도 없는 마음으로
누가 이리 깊은 적막을 풀어 놓는지
오늘 밤은 아마도 저 별들을
하나도 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적막이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모르냐는 듯 출렁이는 별들의 눈빛
차마 마주 대하지 못하고
오래 전에 묻어 버린 이름 하나만
등 뒤에다 감추고 돌아섭니다.

 

시간 속에서 숨겨 놓은 한 시절 햇빛
눈 시리게 희안한 웃음, 뒷모습
그 모든 슬픔 잠든 꽃무덤 하나
누구의 가슴엔들 없으랴마는

 

꽃내음 지천 흩어지는 이런 저녁엔
그저 물소리만 따라 걸으며
가만가만 발끝만 헤아립니다
꽃잠 고요한 어둠 속을 따라오는
눈매 푸른 별 하나
애써 외면하며 돌아옵니다.   

[저녁 시냇가에서/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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