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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글♡그리움

소쩍새와 부엉이

by 월영공주 2007. 3. 30.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서정주

 


그의 말대로 국화꽃 한 송이 소담스럽게 피우기 위함인지,

아니면 내가 아지 못하는 그 어떤 커다란 섭리라도 이루기 위함인지

번개까지 동반한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금요일 저녁이다.

새란 노래하기 마련인 영어체의 표현과 달리(bird - sing)

소쩍새도 울고 천둥도 울고 해야

국화꽃 피기 위한 필요조건이 충족되는 모양이다.

 

으례 한잔 걸치기 마련인 금요일 저녁에

을씨년스런 날씨까지 술추렴 분위기 잡는다.

불현듯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아 오른다'는

철학자 헤겔의 말이 뱅뱅 맴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로마 신화로 치면 아테네쯤 되는)의

어깨 위에 있는 부엉이는 대낮에는 세상을 못 보다가 저녁 무렵이나 날아 오른다는 말이다.

(그러니 부엉이지! - 잠시의 깐죽거림은 접고 다시 진지모드로 돌입하자!)

진리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선행하기보다는 일이 다 끝날 무렵에야 알게된다는 뜻이리라.

 

소쩍새.

어릴적 아버님 따라간 저수지 밤낚시에서 나도 익히 들었던 애잔한 울음소리.

'소쩍 -> 솟 적다 -> 솥이 적다'로 들려 구박받다 죽은 착한 며느리의 영혼이라는 설화가 있다는

부엉이와는 사촌지간 격인 올빼미과의 우리나라 텃새이다.

 

부엉이 사촌이고 황혼도 지났으니 어디선가 울지 않을려나?

 

소쩍새는 어디서 우는가/김태형

 

귀가 밝아진다는 건 그래도 슬픈 일만은 아니었다 
지나간 다큐멘터리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데 
작년 첫 울음 울다 간 소쩍새가 한 문장 속에서 다시 깃을 친다 
홀로 밤늦게 찾아와 길게 목을 풀던 첫 손님 
누군들 그 울음을 받아 적을 수 있었을까 
늘 멀리만 보려던 닫힌 창가에 바짝 다가앉았다 
손때 묻은 수첩을 꺼내든 이의 등 뒤로 눈이 까만 밤새가 울었다 
올해 소쩍새 울음을 들으려거든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아니 더 늦을지도 모른다고 바람이 아직 차다고 
그때나 한번 찾아와 보라고 
정작 나는 그 새가 언제 우는지 기다려지기보다 
어디서 우는지 울어야 하는지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 
저 울음이 배어나왔을 저녁 어둠은 
아직 창밖의 나무옹이 속에 웅크려 있었다 
저물녘 누군가 앉아 있던 자리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울창하고 맑은 밤의 창을 가진 이가 부러운 게 아니었다 
아직 내 마른 묵필은 그 어둠을 가질 수 없었다

 

아직 날도 차고 우는 곳도 명확하지 않단다.

더구나 오늘같이 모진 비바람 속의 도심에서 더 이상의 탐색은 불가능일 것이다.

 

갈치 한 점 뜯다가 멍하고, 술 한 잔 받다가 깜빡하고...

소쩍새에 대한 불신이

저간의 걱정하는 마음을 넘어 갑자기 밀려오기 때문이다.

'천둥'과장은 예년보다 부지런떨며 출근하여 열심히 일하는데

특성상 산 좋고 물 좋은 원격지에서 근무하는 '소쩍새'대리를

도심 속의 내가 일일이 평가하기란 난망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믿어보는 마음에서 믿지않는 마음으로 고쳐잡는

상대적으로 편안한 길을 택하는 순간이다.

 

늦은 귀가길

그만해도 될 것을 계속 '금년목표달성' 결기 다지면 야근하는 천둥번개.

중앙청 삼거리 지날 무렵

때마침 몇번 내리치는 번개가 스트로브 섬광 효과를 주어

매우 인상깊게 보이는 차장 밖의 군중들.

한미 FTA반대 시위단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현시점에서는 '타결'저지 시위단이다.

 

수출해야 먹고 사는 나라에서

뭐니뭐니 해도 제일 큰 시장 미국하고 장사하지 말자는 것 아니지만

하필 이 시점 이런 굴욕적인 방법으로 

손해나는 계약서에 막무가내로 도장을 찍으려하는가?

FTA  반대하면 반미주의자요 쇄국주의자로 몰아가는 것은 그렇다 치자.

협상이랍시고 하는 관료들의 협상력이란 것이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거의 모든 쟁점분야에서 미국 친구들에게 팬티 벗어준 꼴인데

문제는 공개 안 된 사항이 많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채 터지지 않은 지뢰밭이다. 

미국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장사하다 우리정부의 정책이 자기네들 이해에 어긋나면

소송을 제기하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에 가면

주권국으로서의 우리의 자존은 아마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FTA도 일종의 계약이라면 적어도 손해보는 계약은 애당초 하려고 하지 않거나

어쩌다 시작했고 힘에 부쳐 굳이 해야한다면

가급적 버티다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행동양식 아닌가? 

 

이 사회에서 양심적이라 인정받는 시민단체란 단체는 전부 모여

자정 무렵 광화문 일대에서 모진 비바람 맞으며 시위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것은

이른바 국익에도 도움 안되는 협상을 시한연장 하면서까지 기어코

제 갈길 가려는 권력의 오만과 무지를 저지하려는

민초들의 저항에 다름 아니다.

시어머니 구박받아 굶어죽은 며느리 소쩍새의

자식 생각하는 피맺힌 울음인 것이다.

 

설령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지 않을지라도

흐르는 빗물 따라 소쩍새는 절규하였다. 

 

( 퍼온글)